생생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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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변화하는 완주의 문화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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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례문화예술촌은 일제강점기 지은 양곡창고를 개조하여 만들어 세월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난다. 역사적 의미와 문화가 공존하는 예술촌 건물 안에는 갤러리, 문화카페, 목공소, 책박물관 등이 있어 오래된 공간에서 오는 편안한 느낌과 함께 다양한 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
삼례문화예술촌
일본풍 목조건물 벽에 ‘samsam yeye mimi’라 적혀 있다. 삼례 예술의 아름다움? 복합문화공간이면서도 겉치레를 생략했다. 입구가 소박하다. 분수와 야외무대, 아이들을 위한 개구리와 달팽이 조형물…. 삼례문화예술촌에 이르면 세월조차 시나브로 더디게 흐른다.
일제 강점기 수탈의 상징인 양곡창고를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탈바꿈시켰다 하였다. 완주사람들만 갖고 있는 앙큼한 자존심일지도 모르겠다. 오래된 건물에 세월의 이끼가 배어 있되, 깔끔하다. 창고마다 테마가 있다. 갤러리, 목공소, 책박물관, 카페…. 삼례문화예술촌으로 걸음한 이들은 누구나 두고 온 기억을 소환한다. 질서와 정리에 대한 깨달음은 덤이다.
비주얼 미디어아트 미술관
<비주얼 미디어아트 미술관>은 양철슬레이트 벽체로 세월의 녹을 고스란히 받고 있다. 영상매체와 미술을 접목해서 관람객의 예술 감성을 이끌어낸다. 설치미술 작품들이 철따라 달라지니 거기 적힌 모토대로 예술은 재미있다. 영상매체와 미술을 접목해서 관람객의 예술 감성을 끄집어낸다. 모던 풍 오브제와 음향과 조명이 있는 반전의 공간이다.
‘협동생산 공동판매’라고 적힌 촌스런 글씨가 여전히 선명한 붉은 철제문이 간판 역할을 하는 <디자인 뮤지엄>은 산업디자인박물관이다. 오래된 문짝을 그대로 살렸다. 천장 높이 걸린 전등불 아래 서면 호기심이 반짝인다. 세련된 공간배치다. 탄성이 절로 난다.
김상림 목공소
<김상림 목공소>는 작업실이자 전시공간이다. 초록색 입간판이 걸린 입구에 들어서니 장인의 예술혼이 뿜어내는 에너지가 충만해 있다. 한때 어느 숲의 일원이었을 나무들이 노련한 장인의 정성스러운 손길 따라 생활용 가구로 새롭게 탄생하고 있다.
그곳에 잘 정리된 연장들은 인간이 호모 파베르임을 증거하는 듯하다. 전시된 가구들마다 정갈한 품격이 돋보인다. 모던하면서도 고풍스럽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다 보면 수공보다는 화폐의 단위를 세가며 거기 놓인 것들에 욕심을 내는 마음조차 부끄러워진다.
‘삼례는 책이다’라고 적힌 노란 간판이 책공방과 북아트센터를 가리킨다. 아주 오래된 활판인쇄기구가 말 그대로 공장이다. 책에 금박을 입히는 금박기, 압인기 등의 기계가 이렇듯 예쁘고 귀엽고 따뜻할 수 있을까. 이곳에서는 납활자로 나만의 책을 직접 만드는 아날로그식 체험을 할 수 있다.
책박물관이라? 그래, 쌀을 쌓아두었던 창고에 책이 들어 있다. 근현대사의 정신들이 물성으로 집약된 책방에서 우리가 오래 잊고 지냈던 옛 교과서와 만화를 보기 위해 자세를 낮춘다. 시대별 베스트셀러부터 1960년대의 상징인 ‘철수’와 ‘영희’까지 현대사를 한눈에 읽을 수 있는, 참으로 귀한 공간이다.
비비정
빈티지에 흠뻑 취한 다음 삼례문화예술촌을 나오며 노래 한 곡 부르다 우석대학교가 바라보이는 언덕에 오른다. 작은 숲속에 정자 하나가 날아오를 듯 서 있다. 비비정이다. 만경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근대 역사의 들꽃들이 들불로 타올랐던 동학교도의 삼례집회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기억 속의 공간이 아닌 현실의 만경강 한내를 건너야 한다. 고산천과 소양천이 몸을 섞고 전주천과 삼천이 합수하여 ‘만경’이란 이름을 가진 강은 서해로 묵묵히 흘러간다.
완주 사람들은 오래된 것들을 버리지 못한다. 거기 함부로 새것을 올리려 하지도 않는다. 여기 벌겋게 녹이 슨 철교 위를 잠시 걷다 보니 그 옛날 슬레이트 지붕들이 영화 세트처럼 눈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비비정 전망대에서 노을에 젖었다면 설령 기러기가 나는 모습을 보지 못하더라도 잠시만 더 머무르는 것이다. 주등색 불을 켠 무궁화 열차가 한내천을 가로지르는 석양의 장관을 보게 될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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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아저수지를 따라 호반길을 가다보면 신월교에서 시작하는 계곡을 만나게 된다. 이곳이 동상운장산계곡이다. 완주군의 최동단에 위치한 운장산 계곡은 몇해전까지만해도 소양면 위봉산과 진안 운장산 사이에 위치한 우리나라 오지중의 하나였다.
여름이면 운장산계곡 일대가 피서인파로 북새통을 이룬다.
가을이면 주변경관과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를 연상케 한다.
동상운장산계곡
완주군 동쪽 끝으로 가보라. 거기 ‘호남의 전망대’가 위용을 세우고 있다. 노령산맥 주봉, 운장산이다. 구름이 지나는 시간이 도대체 얼마나 오래 걸리기에 운장이라 일렀던가. 인근 연석산의 북두봉과 옥녀봉을 넉넉하게 거느린 산세가 웅장하기 이를 데 없다.
서봉인 칠성대에는 까마득히 먼 세월 북두칠성의 전설이 오롯이 담겨 있다. 때 묻지 않은 천년 원시림의 숲을 지나 발걸음을 재촉한다. 1,126m 정상 운장대에 이르러 잠시 숨을 고른다. 탄성이 절로 나온다. 가히 ‘호남의 알프스’라 이를 만하다.
호남의 내로라하는 일대의 명산들을 거느리고 있는 모습이 장엄하다. 지리산 천왕봉과 덕유 능선까지 펼쳐진 백두대간의 파노라마에 잠시 숨이 벅차오른다. 100대 명산으로 손색이 없다.
동상운장산계곡
우리나라 8대 산간오지라는 운장산 일대의 정기를 받아 굽이굽이 흘러내린 수많은 물줄기가 한 곳에서 만나 운장산계곡을 이룬다. 신월교에서 운장산에 이르는 9km 계곡을 따라 끝없이 펼쳐진 건 차라리 신선의 세계다. 그 신비경에 잠시 넋을 빼앗긴다.
산이 깊으면 물도 깊은 법이라고 했다. 기암괴석에 갈고 닦아져 흘러내린 계곡물이 맑고 깊다. 명경지수다. 자연 휴양지로 이만한 곳이 또 있을까. 해마다 여름이 되면 도시 생활에 지친 수많은 사람들이 앞을 다퉈 이곳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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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출산위봉사’라고 적힌 일주문과 사천왕문을 지나 위봉사 경내로 들어선다. 깊은 산속의 사찰인데도 마당이 평탄하고 널찍하다. 심산의 품속이어서 그런가. 편안하다. 보광명전 앞에 서 있는 늙은 소나무 한 그루가 고찰의 품격을 말해준다.
비구니들만의 도량인 위봉사는 한눈에 보아도 정숙한 중년 여인의 자태처럼 단아하다. 사찰 내부 건축물의 배치나 공간 구성 어디에도 과장이나 허세가 보이지 않는다. 가히 절제의 미학이다. 팔작지붕으로 유명한 보광명전 지붕의 용마루와 위봉산의 부드럽고 완만한 능선 자락의 조화가 절묘하다.
절 내부를 천천히 둘러보다 극락전 앞 삼층석탑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그 옆에 노랗고 붉은 튤립 몇 송이가 수줍게 피어 있는 곳, 고요와 위무가 있는 사찰이 위봉사다.
연꽃 향기 그윽한 사찰길을 벗어나 위봉산 고갯길로 접어든다. 위봉산성 서문이 눈앞에 나타난다. 조선 숙종 원년에 처음 축조되었다고 한다. 4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모진 풍상을 견뎌 온 산성의 자태가 예사롭지 않다. 이 깊은 산속에 하나씩 올려 정성스럽게 쌓은 돌 하나마다에 조선왕조 흥망성쇠의 역사가 깃들어 있는 듯하다.
고갯마루를 벗어나자 길가에 2층짜리 정자 하나가 서 있다. 현판에 ‘위봉폭포정’이라고 적혀 있다. 나무 계단으로 만든 ‘고종시 마실길’로 들어서니 울창한 숲과 하나가 된다. 그곳에서 보았다. 주변의 기암괴석과 울창한 숲 사이로 시원스럽게 비륙직하하는 60m의 물줄기를…. 저것이 바로 완산8경의 하나로 손꼽힌다는 위봉폭포인가. 완산 제일 비경이다.
위봉사&위봉폭포&위봉산성
위봉산성은 1675년(조선 숙종 1)에 쌓은 것으로 총 둘레가 16km에 달하는 대규모의 산성이다. 유사시에 전주 경기전과 태조의 초상화, 그의 조상을 상징하는 나무패를 피난시키려고 성을 쌓았는데, 실제로 동학농민혁명 당시 초상화와 나무패를 성안으로 가져오기도 했다. 산성 안에는 위봉사와 위봉폭포가 있어 함께 둘러보면 좋다.
예로부터 완산 8경으로 이름난 위봉폭포는 소양면 대흥리 위봉산 허리에 자리하고 있다. 높이 60m의 2단폭포로서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가 장관을 이루면 답답하게 닫힌 가슴을 시원스럽게 열어준다. 수량이 많은 여름철, 폭포의 장관은 더욱 빼어나지만, 겨울에는 꽁꽁 얼어붙은 하얀 비단 폭이 드리워져 있는 것 같아서 보는 이의 눈길을 끈다.
위봉산 자락에 위치한 위봉사는 소양면 대흥리 위봉산 마루턱, 위봉산성 안에 자리하고 있다. 대웅전 용마리에는 청기와가 고색창연하게 박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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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명산 자락에 있는 화암사는 조선시대에 지어진 사찰로 세월의 흐름을 멋지게 담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불명산의 자연에 숨어있듯 묻혀있기 때문에 사찰을 찾아가는 재미도 있다. 시인 안도현은 "나혼자 가끔씩 펼쳐보고 싶은, 작지만 소중한 책 같은 절"이라 하였다. 국보 제316호로 지정된 극락전이 유명하다
인간세 바깥에 있는 줄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나를 미워하는지 턱 돌아앉아 곁눈질 한번 보내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화암사를 찾아가기로 하였습니다. 세상한테 쫒기어 산속으로 도망가는 게 아니라 마음이 이끄는 길로 가고 싶었습니다. 계곡이 나오면 외나무다리가 되고 벼랑이 막아서면 허리를 낮추었습니다. 마을의 흙먼지를 잊어먹을 때까지 걸으니까 산은 슬쩍, 풍경의 한귀퉁이를 보여주었습니다. 구름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구름 속에 주춧돌을 놓은 잘 늙은 절 한 채
그 절집 안으로 발을 들여 놓는 순간 그 절집 형체도 이름도 없어지고, 구름의 어깨를 치고 가는 불명산 능선 한 자락 같은 참회가 가슴을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마을에서 온 햇볕이 화암사 안마당에 먼저 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세상의 뒤를 그저 쫒아다니기만 하였습니다. 화암사, 내 사랑 찾아가는 길을 굳이 알려주지는 않으렵니다.안도현, <화암사, 내 사랑>
주운 도토리 몇 알 염주처럼 굴리며 느릿느릿 가는 길 화암사로 안내하는 길은 구두 뒤축만큼 움푹하다. 묵언수행 중인가, 침묵만 우려내고 있는 화암사 늑골, 너무 환해서 숨통이 조여 온다. 사내가 보고 싶은 것은 날갯죽지가 부러진 새의 무덤. 불성(佛性)을 탓하랴 비쩍 마른 견공이 누런 혀로 밥그릇을 핥고 있고 사내의 목덜미에도 경전 몇 구절이 식은땀처럼 흐른다.
날숨과 들숨이 섞인 바람은 세상 끝자락을 몰아 부유하는 목어(木魚)를 거칠게 내리갈기고 생은 포개지도 떼 내지도 못하는 애인처럼 거추장스럽고 탐욕을 버리지 못한 호두알은 쉽게 깨지지 않는다.
일몰 직전의 불그스레한 마음이 마당귀를 적시고 허공에 비명을 심어 놓고 비로소 결박을 푸는 사내 화암사는 하루 종일 난해한 불경을 강독하고 있다.
기명숙, <화암사>
절을 두고 잘 늙었다고 함부로 입을 놀려도 혼나지 않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나라의 절치고 사실 잘 늙지 않은 절이 없으니 무슨 수로 절을 형용하겠는가. 심지어 잘 늙지 않으면 절이 아닌 것처럼 여겨지는 심사도 무의식 한쪽에 풍경처럼 매달려 있는 까닭에 어쩔 수가 없다. 잘 늙었다는 것은 비바람 속에 서로 비뚤어지지 않고 꼿꼿하다는 뜻이며, 그 스스로 역사이거나 문화의 일부로서 지금도 당당하게 늙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화암사가 그러하다. 어지간한 지도에는 그 존재를 드러내고 밝히기를 꺼리는, 그래서 나 혼자 가끔씩 펼쳐보고 싶은, 작지만 소중한 책 같은 절이다. 십여 년 전쯤에 우연히 누군가 내게 귓속말로 일러주었다. 화암사에 한번 가보라고, 숨어 있는 절이라고, 가보면 틀림없이 반하게 될 것이라고….
안도현, <잘 늙은 절, 화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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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악산과 경각산의 사랑이야기
먼 옛날,
완주 구이면에
경각산과 모악산이
마주보고 있었습니다.
계절마다
아름답게 변하는
모악산에 반한
경각산은
모악산에게
청혼을 합니다.
나랑 결혼해줄래?
하지만
모악산은
받아주지를 않았죠
그러나 끈질기고 진심어린
경각산의 모습에
결국
마을을
받아들이는
모악산
둘이
그렇게
아름다운 결혼을
하게 되자
구이면에는
생명의 근원이자
풍요의 상징인 물이
넘쳐흐르게 되었답니다.
여러분도
이들처럼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만들어 보세요.
이곳에서
사랑을 고백하면
그 사랑이
꼭 이루어진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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